미숫가루

from 추억의 부스러기 2013.01.10 18:38


바람이 매섭다. 이런 날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다. 언제였더라.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한 때가. 아마 어른이 되었을 무렵일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가, 시원한 물과 얼음을 넣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된다'는 것 따위의 정보를 외웠다가 자랑스럽게 써먹기 시작하는 것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직 한국에 '아메리카노'라는 커피가 들어오지 않았다. 커피라고 해봐야 맥심이나 보통 믹스 커피를 마시던 시절이었다. 하물며 최신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어느 시골마을은 어떠했을까. 그 시절 부모님은 카센터를 운영하셨다.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이 되면 학교를 마치자마자 부모님이 계신 카센터로 달려 갔다. 내가 오면 엄마는 스텐 대점에 얼음을 동동 띄운 미숫가루를 타주셨다. 시원하고 달짝지근한 미숫가루를 단숨에 들이키고 나면 엄마 무릎에 누워 낮잠을 자곤 했다.

지금 나는 어느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과연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커피의 맛이 그리워 질 날도 올 것인가.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이 에스프레소든 아메리카노든, 미숫가루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것. 

바람이 매섭다. 마음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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