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을 맞아 충북 음성군에 위치한 납골당에 다녀왔다. 많이 못찾아 가서 미안하고 보고싶다. 


TO.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나야 승근이. 엄마 하늘로 가고 난 뒤에 이렇게 편지 써보는게 처음인 것 같네. 살아 있을때도 못 써줬는데. 앞으로 자주 쓸게. 거기서는 잘 지내고 있지? 엄마 죽고나서 나 많이 힘들었어. 때아닌 원망도 들기도 했고 그래도 잘 이겨내서 대학교 졸업도 했고 지금 그래도 괜찮은 회사 잘 다니고 있어. 졸업식 때나 첫 월급 받았을 때 엄마생각 많이 나더라고. 검마랑 같이 사진도 찍고 내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이쁜 옷도 사줄 수 있는데...

엄마 왜이리 일찍 떠났어...내가 진짜 잘 해줄 거였는데. 나 그래도 엄마한테 고마워. 엄마가 나 이 세상에 낳게 해주고 키운 덕분에 잘 살고 있고 지금 이쁜 여자친구도 만나고 있어. 너무 좋은 여자라서 결혼도 하고 싶어. 다음에는 같이 와서 인사 같이 할테니깐 따뜻이 맞아줘.

엄마 저번달에는 형이 결혼했어. 앞으로 잘 살도록 하늘에서 기도해줘. 엄마가 만들어준 송편 먹고싶다.

엄마 다음에 또 올게. 사랑해요 엄마. 

2017. 10. 4

엄마아들 승근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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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식 사진.

게임 디아블로2, 한게임 테트리스에 빠졌고, 테크노와 발라드를 즐겨 들었다. 두루넷으로 버디버디를 하면서 폭탄도 날려보고 인터넷 동창사이트 다모임에 가입했다. 밀레니엄을 필두로 디지털, 세계화라는 기점에 서있던 저 당시. 그냥 걱정없이 놀았던 시절이고 졸업식 때는 눈이 참 많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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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엄마와 떨어져서 지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통장으로 용돈을 받았다. 2003년 1월, 유독 추웠던 그날은 용돈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전부터 잔액확인을 했지만, 통장에 입금내역은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보채다가 기어이 짜증을 부린다. 엄마는 오히려 나를 다독이고 바로 보내준다고 하였다.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 입이 미안함을 표시하기에 철이 덜 들었다.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어렸을 적, 나는 엄마의 허벅지에 파묻혀서 엄마가 내 귀지를 파주는 것을 좋아했다. 약간 따끔거리지만 귀 안의 이물질이 제거되는 느낌이 좋았고 무엇보다 파묻힐 때 느껴지는 엄마의 따뜻한 촉감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를 멀리하게 되었다. 단지 용돈이 필요할 때만 엄마에게 전화하는 나쁜 아들이었다. 간혹 영화를 같이 볼 때는 엄마는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곤 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조는 엄마를 구박하는 이해심없는 아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 통화는 끈적끈적한 죄책감이 되 섞였다. 통화에 조금만 더 애정을 담이 했더라면, 그날 용돈이 아닌 엄마와 따뜻한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더라면, 아니 아예 함께하자고 말했더라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계속 이어나가며 나를 괴롭혔다. 떨어져 지내면서 다시 함께 지낼 날을 기다리면서 세상 풍파 속에서 몸부림치던 엄마는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어떤 아들이었을까. 엄마 밥해줘. 재밌는 영화 나왔는데 같이 보러 가자. 엄마 나 해외인턴됐다. 와 같은 따위의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외식도 하고 청소를 안 하면 잔소리도 하거나 짜증을 내면서 지내는 평범한 일상을 기다리며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엄마 생일이 다가온다. 왠지 그냥 백화점에 들어가 엄마선물을 골라보기로 한다. 엄마는 무뚝뚝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예쁜 목도리를 골라서 걸어주며 세상에서 가장 예쁜 표정으로 웃어주고 싶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바보처럼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온다. 자기 전에 샤워를 하니 귀 안이 간지럽다. 면봉을 귀에 넣어 부비적 부비적 돌려본다. 갑자기 엄마의 푹신한 허벅지에 눞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누울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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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삐

from 추억의 부스러기 2013.08.30 08:30

<토토로같은 애완동물이 좋다.>


오늘은 강아지 이야기에 관한 부스러기를 모아본다. 나는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몇 번있다. 하지만 그때 키운 기간은 그렇게 길지가 않다. 강아지, 고양이를 키워봤었는데 오늘은 강아지 이야기를 해본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전북 김제 근처에 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국도변에 작은 슈퍼마켓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동네 주민들이 주를 이루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품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은 몸에 하얀 털을 가졌던 것으로 보아 아마 말티즈 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나의 친형은 이 강아지가 2번째 키우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강아지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강아지에게 '뽀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지금 들어보면 참 촌스러운 이름이다. 그렇게 뽀삐와 우리 가족의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형과 나는 뽀삐와 재밌게 놀아주었다. 시골 강아지라 그런지 붙임성이 있었고 애교도 많은 아이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저녁이었다. 저녁에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밖에서 '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 형과 나는 슬리퍼도 신지않고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뽀삐는 집앞 마당에 지내다가 도로 불빛이 좋았는지 도로변에 있다가 그만 차에 친것이었다. 뽀삐는 숨을 헐떡헐떡 거리면서 숨을 거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뽀삐를 그렇게 만든 차는 이미 어둠속으로 사라졌고 그 아이를 보고 있던 나의 눈은 점점 뿌옇게 변하면서 볼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르면서 뽀삐와의 즐거움은 그렇게 끝이났다. 

죄책감인지 그 동안 쌓였던 정때문인지 나는 정성을 다해 뽀비를 뒷마당에 묻어주었다. 인생은 야속하다. 묻어준 뒷마당은 훗날 텃밭으로 변하면서 뽀삐의 무덤은 트랙터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뽀삐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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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우리는 줄여서 싸이라 불렀다. 2005년 나는 서울 소재 M전문대학에 입학하였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학과, 동아리에서 만난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싸이 해?"라 서로 묻고 일촌을 맺었다. 이때, 일촌명은 상당히 나의 머릿속을 아프게 했다.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일촌명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 각각을 짓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싸이를 통해 관계의 끈의 시작을 끊었다. 그때 당시에 미니홈피는 필수가 아닌 필수였다. 서로 자기가 원하는 사진을 퍼가고, 방명록, 일촌평을 남기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Today 숫자를 확인하고는 했다. 그러면서 파도를 타면서 친구들 미니홈피를 돌아다니고 좋아하는 연인이 있다면 몰래 들어와서 그 사람에 대해 훔쳐보는 소소한 재미를 누리고는 했다.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페이스북, 트위터가 등장하면서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싸이월드는 이 흐름에 맞춰가지 못하면서 하나, 둘 각각 싸이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변화의 흐름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더욱 크게 바뀌었다. 이탈하는 숫자는 증가하면서 이곳, 싸이에는 사람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空攄(공터)'로 남게되버렸고 간간히 다이어리를 쓰거나 대부분 유령 홈페이지 주인이 되었고, 네이트는 단지 학과 클럽 접속용 홈페이지로 남게되버렸다. 싸이가 그렇게 변하면서 이를 통해 이어가던 관계의 끈이 끊겼다.

오늘 싸이가 그리워졌다. 마침 어플도 있어 다운받아 접속해본다. 이제서야 스마트폰에 적합한 UI(User Interface)가 도입되었고 깔끔하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인원은 손에 꼽을 정도이니 아쉬움을 담은 한숨이 나온다. 접속한 김에 일촌 미니홈피를 훔쳐보고 싶지만 파도는 컴퓨터로 타야 '제맛'이기에 참아본다. 싸이월드. 그때는 우리의 쉼터이자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그 끈은 관계가 아닌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끈으로 바뀌었다. 나는 차마 이 끈을 잘라버릴 용기가 없어 탈퇴하지 못하고 기웃기웃 거리면서 똥싸면서 한탄만을 해본다.

뱀꼬리- 다들보고 싶다. 혼자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망상이기에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타임머신을 같이 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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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from 추억의 부스러기 2013.06.27 14:44


고등학교 시절, 박찬호가 등판하는 날이면 수업몰래 라디오로 경기중계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아시아 선수로는 메이저리그 최고인 125승을 달성한 투수이다. 이 기록은 일본 노모 히데오(123승)을 뛰어넘는 대기록이다. 이렇게 유명한 그에게도 그늘은 있었다.

박찬호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LA다저스에서 마이너리그로 강등되기도 하였고, 부상에 걸려 선수의 생명이 끝이라는 악재도 닥쳤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가진 세 가지(지적, 신체적, 정신적)능력 가운데 정신력이 강했다. 모든 사람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한계지점에서 다시 한 걸음 내디디는 용기를 가졌다. 

이 선수를 보니 나도 그랬다. 하나뿐인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던 시절 혼자 라면을 끓여 먹으며 눈물로 외로움을 달랜 적도 많았다. 박찬호가 성적이 바닥을 헤매던 2004년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에 나또한 수학능력시험을 망치고 세상을 저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라고 자문하였다. 얼굴은 잘 생기지도 않고, 노래를 잘 하지도 않는 나였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길은 공부밖에 없었다. 이렇게 목적이 생기자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자 죽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살아와 현재는 대학 졸업 문턱까지 왔다.

박찬호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인생들을 살아오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숨겨왔다. "134승은 하나 하나의 공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것의 끝에서 새로움이 시작된다. 새로운 길도 공 하나씩 던져가며 뚫을 수밖에 없다." 라는 말처럼 나도 그가 살아왔던 길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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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박찬호

미숫가루

from 추억의 부스러기 2013.01.10 18:38


바람이 매섭다. 이런 날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다. 언제였더라.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한 때가. 아마 어른이 되었을 무렵일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가, 시원한 물과 얼음을 넣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된다'는 것 따위의 정보를 외웠다가 자랑스럽게 써먹기 시작하는 것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직 한국에 '아메리카노'라는 커피가 들어오지 않았다. 커피라고 해봐야 맥심이나 보통 믹스 커피를 마시던 시절이었다. 하물며 최신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어느 시골마을은 어떠했을까. 그 시절 부모님은 카센터를 운영하셨다.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이 되면 학교를 마치자마자 부모님이 계신 카센터로 달려 갔다. 내가 오면 엄마는 스텐 대점에 얼음을 동동 띄운 미숫가루를 타주셨다. 시원하고 달짝지근한 미숫가루를 단숨에 들이키고 나면 엄마 무릎에 누워 낮잠을 자곤 했다.

지금 나는 어느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과연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커피의 맛이 그리워 질 날도 올 것인가.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이 에스프레소든 아메리카노든, 미숫가루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것. 

바람이 매섭다. 마음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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