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엄마와 떨어져서 지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통장으로 용돈을 받았다. 2003년 1월, 유독 추웠던 그날은 용돈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전부터 잔액확인을 했지만, 통장에 입금내역은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보채다가 기어이 짜증을 부린다. 엄마는 오히려 나를 다독이고 바로 보내준다고 하였다.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 입이 미안함을 표시하기에 철이 덜 들었다.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어렸을 적, 나는 엄마의 허벅지에 파묻혀서 엄마가 내 귀지를 파주는 것을 좋아했다. 약간 따끔거리지만 귀 안의 이물질이 제거되는 느낌이 좋았고 무엇보다 파묻힐 때 느껴지는 엄마의 따뜻한 촉감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를 멀리하게 되었다. 단지 용돈이 필요할 때만 엄마에게 전화하는 나쁜 아들이었다. 간혹 영화를 같이 볼 때는 엄마는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곤 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조는 엄마를 구박하는 이해심없는 아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 통화는 끈적끈적한 죄책감이 되 섞였다. 통화에 조금만 더 애정을 담이 했더라면, 그날 용돈이 아닌 엄마와 따뜻한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더라면, 아니 아예 함께하자고 말했더라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계속 이어나가며 나를 괴롭혔다. 떨어져 지내면서 다시 함께 지낼 날을 기다리면서 세상 풍파 속에서 몸부림치던 엄마는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어떤 아들이었을까. 엄마 밥해줘. 재밌는 영화 나왔는데 같이 보러 가자. 엄마 나 해외인턴됐다. 와 같은 따위의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외식도 하고 청소를 안 하면 잔소리도 하거나 짜증을 내면서 지내는 평범한 일상을 기다리며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엄마 생일이 다가온다. 왠지 그냥 백화점에 들어가 엄마선물을 골라보기로 한다. 엄마는 무뚝뚝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예쁜 목도리를 골라서 걸어주며 세상에서 가장 예쁜 표정으로 웃어주고 싶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바보처럼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온다. 자기 전에 샤워를 하니 귀 안이 간지럽다. 면봉을 귀에 넣어 부비적 부비적 돌려본다. 갑자기 엄마의 푹신한 허벅지에 눞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누울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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